[한겨레] "재건축을 하지 말라는 정권에서 뭘 기대하겠습니까? 법이 바뀔 때까지 기다려봐야지요"(서울 개포동 주공아파트 주민 김아무개씨) "재건축 사업 추진에 동의는 했지만 개발부담금 걱정이 태산입니다"(서울 잠원동 ㅎ아파트 주민 정아무개씨)

다음달부터 시행되는 안전진단 강화와 9월 예정인 재건축 개발부담금제 시행을 앞두고, 80여개 단지의 8만여 가구에 달하는 서울 강남권의 재건축 단지들이 엇갈린 행보를 보이고 있다. 사업초기 단계에 있는 단지들은 본격적인 사업착수를 다음 정권으로 미루고 있는데 반해, 사업이 어느정도 진척된 단지들은 규제를 하나라도 더 피하기 위해 사업추진에 속도를 내고 있다. 단지 주민들과 조합 간에 사업 강행와 연기 여부를 놓고 갈등을 빚는 곳도 나오고 있다.

부동산업계는 재건축 규제 가운데서도 '핵폭탄' 급인 개발부담금이 도입되는 9월 이후에는 강남권 재건축 아파트 단지들의 명암이 극명하게 엇갈릴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또 규제를 겹겹이 받는 초기 재건축 단지를 중심으로 가격 내림세도 본격화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재건축단지들 세갈래 행보 =

강남구 개포주공아파트의 경우 기반시설부담금과 재건축 개발부담금을 모두 적용받게 돼 당분간 재건축이 어려워진 대표적 단지로 꼽힌다. 최근 주공4단지 재건축조합이 시뮬레이션을 통해 개발부담금을 포함한 조합원 추가부담금을 계산했더니 13평형 아파트를 32평으로 늘릴 경우 가구당 3억7785만원에 이르는 것으로 나왔다. 이에 따라 조합과 주민 모두 재건축 사업 연기를 기정사실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인근 ㅅ공인중개사사무소 관계자는 "이대로 재건축을 하면 엄청난 추가 부담금이 든다는 소식이 알려진 후 실망 매물이 나오고 있지만 사려는 사람은 전혀 없다"고 말했다.

송파구 가락동 가락시영과 강동구 둔촌동 둔촌주공은 재건축을 밀고 갈 것인지, 당분간 중단할 것인지를 놓고 고민에 빠졌다. 두 단지는 최근 정비구역으로 지정됐으나 주민들이 원했던 3종 주거지역으로 상향조정되지 않고 2종 주거지역으로 지정돼 용적률 최고 230%, 평균 층고 16층을 적용받게 됐다. 이에 따라 가락시영의 경우 재건축 포기와 강행 의견이 팽팽히 맞서고 있으며, 반대파 주민들은 아예 정비구역 지정 취소를 요구하고 있다. 둔촌주공은 지난 14일 정비구역으로 지정돼 다음달 안전진단 강화 대상에서는 가까스로 제외됐으나 기반시설부담금, 개발부담금을 모두 적용받게 돼 주민들 사이에서 재건축 연기 여론이 점차 높아지고 있다.

재건축 초기 단계지만 각종 부담금을 내고서라도 재건축을 강행하겠다고 나선 이채로운 사례도 있다. 강남구 대치동 청실1·2차(1378가구)는 최근 주민 임시총회를 열고 사업시행인가를 다시 준비하는 등 재건축 사업을 재추진하기로 했다. 이 단지는 내년 하반기에 착공해 2010년 입주를 목표로 하고 있으며, 내심 차기 정권에서 법이 바뀌어 완공 뒤에 부과되는 개발부담금만은 피할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다.

부담금 피하려다 분쟁 불러오기도 =

이달 12일부터 시행된 기반시설부담금을 가까스로 피한 단지도 많다. 강남구 역삼동 개나리4차·진달래3차·성보와 서초동 삼익, 잠원동 반포한양 등은 이달 12일 직전에 사업시행인가를 받아 기반시설부담금 부과 대상에서 간신히 벗어나는데 성공했다.

가장 부담이 큰 개발부담금을 피하기 위해 총력전에 나선 재건축 단지들도 눈에 띈다. 서초구 반포동 삼호가든 1, 2차, 잠원동 한신5차·6차, 잠원동 대림, 반포동 미주 등 10여개 단지 1만여가구는 관리처분인가 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들 단지는 9월24일까지 관할 구청에 조합원 평형배정과 분담금 산정 신청을 마치면(관리처분인가) 개발부담금 부과 대상에서 벗어나게 된다. 그러나 한신6차의 경우처럼 일부 주민들이 조합을 상대로 법원에 '임시총회 무효확인 및 재건축조합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내는 등 심각한 갈등이 빚어지는 곳들도 있다. 백준 제이앤케이(재건축 정비업체) 대표는 "조합 쪽이 규제를 피하겠다는 명분을 앞세워 추가 분담금 등에 불만이 있는 소수 주민들의 의사를 무시하고 무리하게 사업을 추진할 경우 분쟁이 일어날 소지가 많다"고 말했다. 최종훈 기자 cjh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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